좋은 글

여행/이 진명

엄마의취향 2008. 1. 10. 11:34

 

 

 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

 보라.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

 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

 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

 얼마나 눈 부신가

 안 돌아오는 것들

 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

시계점처럼

 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

 

 

 그때는 몰랐다

 안 돌아오는 첫밤,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

 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

떠뜨리고

 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

 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은

 없었다. 그 이후론

 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

 계단도 계단 구석에 세워둔 우산도

 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

 없었다. 없었다. 흔들림이

 

 

 

 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

 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

 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

 여행을 떠나려 한다

 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

 놀라워라.그래도 한 곳이 찢어지며

 시계점처럼  탱 탱 탱 피가 흐른다

 

 

 

 보고 싶은 만큼, 부르고 싶은 만큼

 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

 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

 그곳으로 여행가려는 나는

 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

 대가지 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

 멍텅구리 빈 소리의 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

 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더라도