아침이슬
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발처럼 뚝 뚝 끊어 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. 조용히,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,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. 저물녘, 마음 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길 갈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 ..
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,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,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몾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,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.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, '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,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?"
눈이 휘몰아치던 어느날의 선운사. 누이여, 벌판에서 새소리 들리고 수수밭머리엔 아직도 바람소리 끝나지 않았다 바람을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너는 너의 무게로 고개를 숙이고 철새마다 다 떠나고 말면 세상에는 무엇이 남아 벌판을 흔드랴 땅거미 짙어가는 어둠을 골라 짚고 꿑없는 벌판길을 걸어..
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.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,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,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, 하고
푸른 산이 흰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이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......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..
달빛을 흔들고 섰는 한 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리움에 데인 상처 한 잎 한 잎 뜯어내며 눈부신 고요 속으로 길을 찾아 떠나는...... 제 가슴 회초리 치는 한 강물 그렸습니다 흰구름의 말 한마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울음을 삼키며 떠나는 뒷모습이 시립니다. 눈감아야 볼 수 있는 한 사람을 그렸습니..
( 비 바람치는 쓸쓸한 화단보다는 차라리 냉면을 담던 옹기속이 더 낫지 않을까~내 생각이다~)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..
( 몽오리에서 뿜어내는 강렬한 향기가 코를 킁킁거리게 만들던 앞 마당의 소국)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. 길었던 그리움이 익어 유순히 길들여진 기다림에 눈부신 가을 낮은 그렇게 재촉으로 겨울로 몹니다. 당신을 기억해야 할 나의 가을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겠지만 당신을 품고 살 때마다 내게는 ..
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오래 흘러온 강물을 깊게 만든다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여고 2학년 저 종종걸음치는 발걸음을 붉게 만든다, 불그스레 달아오른 얼굴은 생살 같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다 그리하여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멀어지려 해도 멀어질 수 없는 우리들의 손을 붙잡게 하고 끝내 사..
오래 참고, 깊이 생각하다가 시퍼런 칼 아래 목을 들이미는 무사 같은, 가을 나뭇잎 사이로 맑은 슬픔이, 번뜩 스쳐간다 따뜻하면서, 섬뜩한 가을 빛 내리꽂히는 오후